토론토로 이적한 류현진의 선발 2차전은 최악이었습니다. 모든 구종의 구속이 2~3마일 떨어졌고ㅡ직구의 속도가 93마일 전후는 나와야 변화구가 산다ㅡ정교한 콘트롤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제1선발로써 이런 성적이 몇 게임 더 지속되면 순위가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 선발에도 이런 경우가 되풀이된다면 올 한해 베팅볼 투수 수준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변화구 위주의 투수로 자리잡아 성공하려면 메덕스나 글래빈 수준의 컨트롤을 갖추어야 합니다. 류현진의 변화구는 위력적이지만 포수와 사인 나눈 후의 실제투구를 보면 핀포인트 제구는 과정된 면이 있습니다. 

 

 

 

류현진의 부진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아는 것 같아 더 위축된 피칭이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먹튀라는 소리까지 듣게 된다면 정말 걱정입니다. 두 번의 등판,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류현진이었습니다.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mBZ_-oQJ54

 

당신이 내게 다가왔을 때(1)

 

 

 

 

바람이 붑니다

하늘에서 땅까지

하나의 향기로 바람이 붑니다

지금까진 막연한 그리움이었습니다

언제고 내 피가 뜨거운 중에

아니 어쩌면 안개 속에 있었기에

있었는지조차 미더웠던

왜 바람이 부는지

그 속의 향기는 나만의 것인지

어찌하여 새벽 동틀 무렵엔

내 영혼은 산란기의 연어가 되는지

 

지금까지는

내 몸에서 빠져나간 내가

저기 어디쯤 있을 거라고

무언가 익숙한 느낌이

호흡처럼 스며들 것이라고

 

삶 속의 숱한 우연들처럼

당신이란 의미가

내 앞의 햇살이 되기 전까진

 

 

 

 

 

 

당신이 내게 다가왔을 때(4)                                             

 

편지를 씁니다                                   

봄비 그친 후 첫 햇살로

당신 이름을 쓰고

당신 닮은 목련의 향기들로 인사를 하고

4월 바람 속 온기들만 모아서

첫 줄을 씁니다

 

다음 한 줄은 5월의 나무들에 기대어

물오른 초록들을 빌리렵니다

봄볕에 하나 씩 익어가는 딸기의 당분으로

내 떨림을 적으렵니다

 

지금 방안엔 숱한 꽃들과 바람

잎새들로 넘쳐 있는데 

4번째 줄에서 멈춰 있는 말들이

당신 모습만큼 아름답지 못해서

음주운전 경력 때문에, 법적 처벌을 모두 받았음에도 뺑소니 전력 때문에,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도 피해를 입히지 않았음에도, 진심어린 사과를 안했다는 언론의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보도와 일부 키보드워리어 때문에 KBO로의 복귀를 포기한 강정호 선수의 사례를 보면서 한국사회의 불관용이 너무나 무섭기만 합니다.

 

 

 

 

운동선수에게 가혹할 정도의 윤리 기준을 들이댄 이번 사례는 수백억을 탈세한 그 이상의 벌금을 낸 메시와 호날두와 비교할 때 가혹하기 그지없습니다. 운동밖에 모르는 젊은 선수에게 성자 수준의 윤리를 적용하는 것은 패자부활전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분노와 갈등, 반목과 집단적 폭력만 난무하는 한국사회...

용서와 화해, 포용을 모르는 디지털공간...

그리고 박원순 사태에서 확인하고 있듯이 폭력적으로 변질된 메갈식 페미니즘의 폭주...

 

 

저는 누구에게나 패자부활전이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철없던 시절의 잘못 때문에 모든 미래가 봉쇄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끝까지 바로잡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지만, 그것이 과잉처벌을 위한 분노의 발산이라면 '실수와 잘못하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젊은이들'을 양산할 수 있습니다. 

 

 

 

 

뒤늦었지만 강정호 선수의 KBO리그 복귀가 다시 추진됐으면 합니다. 한 젊은이의 미래를 짓밟는 것보다 그 젊은이가 철없던 시절의 잘못을 하나하나씩 만회해가면서 보다 성숙된 인간으로 커가는 것을 봤으면 합니다. 발목이 부러지는 부상도 극복했었는데 이번 복귀 포기도 극복했으면 합니다. 장애인을 살아온 평생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운동선수가 되고 싶은 늙은도령의 바람이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mUMoLftiNM

 

행여 그대 저 문 밖에

 

 

 

 

내 그리움이 너에게로 가면 슬픔이요

너의 잔소리라도 내게로 오면 기쁨이다

떠올릴 수 있다면 어디선가

지금은 기억의 단편에도 없는

처음의 다툼 상처조차 되지 못한 말들도

기쁨이려니

어떻게 인들 아침을 해치우고서

습관처럼 물을 끓이는데

꺼내 놓은 잔이란 아직도 두 개라오

 

행여 그대 저 문 밖에

지금이라도

 

 

https://youtu.be/iRBQjZ71eVA

 

 

사업이 망한 후 나의 삶은 그 자체로 지옥이었다. 산다는 것은 하루의 단 몇 분만 의미가 있을 뿐이었다. 매일같이 자살만 생각했던 것도 그 당시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방법의 자살에 매몰된 그 어느 날 뜬금없는 생각이 하나 들었다.

 

'대체 내가 뭘 잘못했지? 뭐 때문에 이렇게 죽어야 하지? 에이, 어차피 죽을 것, 알고나 죽자. 내가 왜 이렇게 죽어야 하는지' 

 

 

 

https://www.youtube.com/watch?v=Y5fHwaCMkbw

 

 

 

글이나 쓰면서 살았으면 충분했을 필자가 사업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단순했습니다. 저의 사업이야기를 하려면 저의 멍에부터 언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부산 동래에서 태어난 필자는 백일 직후에 소아마비에 걸렸습니다. 외국인이 들여온 소아마비 바이러스에 걸렸던 것이지요. 부모님 말씀에 따르면 당시에 많은 아이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합니다.

 

 

헌데 그 후유증 때문인지 저는 어려서부터 신경성 수면장애가 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 그 증상이 악화돼, 항우을제 계통의 수면유도제를 복용해야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수면유도제를 장기 복용하게 됐습니다. 그것 때문인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정말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저에게 '아침형 인간'이란 먼 나라 이야기에 불과했고 그에 맞춰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제가 지체 장애인(오른쪽 다리가 불편한 소아마비)인 것을 떠나서 정상적인 취업이 불가능했고 결국 30세에 이르렀을 때 오후에만 출근하는 작은 신문사에 취직할 수 있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과외를 통해 돈을 벌었는데 돈이란 기준으로 보면 신문사에 취직한 것이 몇 배는 손해였습니다. 당연히 비정규직이었고요. 

 

 

어쨌든 정부로부터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대한민국 전체를 대박의 소용돌이 속으로 미쳐 날뛰게 한 벤처광풍이 빠르게 식어가던 시기였으며,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는 거품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꺼져가던 시기였습니다. 한 마디로 파장의 분위기였고 광기의 끝물이었습니다.

 

 

헌데 운명인 듯 신문사의 조그마한 사무실에 얹혀 지내던 프로그래머가 한 명 있었습니다. 저의 눈에는 그가 신기하면서도 처량해보였지만 세상에 있는 모든 컴퓨터를 바다 속에 수장시켜버리고 싶을 정도로 컴퓨터를 싫어하고 멀리했던 저로써는 신세계를 보는 듯한 기분이 더 강했습니다. 

 

 

사실 저는 대학교에 다닐 때 카드를 천공해 프로그램을 짜는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당시 과제로 주어진 프로그램을 완벽하게 작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오류가 나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의 천공 카드를 사용하는 컴퓨터의 오작동율이 8만분의 1인데 하필 제가 그 확률에 걸려든 것이었죠.

 

 

컴퓨터와의 악연은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재수까지 해서 치른 대학입학시험 성적이 최초의 컴퓨터 채점의 결과 때문인지 가채점보다 20여 점이 나쁘게 나왔습니다. 집권을 위해 죄 없는 국민을 수천 명이나 사살한 독재자인 전두환 전 대통령이 대학정원을 거의 두 배에 조금 못 미치기게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오류가 많았던 시절의 컴퓨터 채점 때문에 전국 등수는 고3 때보다 2배 이상 떨어져 대학을 하향 지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삶이 이러했으니 컴퓨터에 대한 불신이 이만저만한 상태가 아니었는데, 대학시절부터 8만분의 1에 해당하는 오작동이 저에게서 일어났으니 돌아버릴 지경이었죠. 그런 이유들로 해서 저는 컴퓨터란 단어만 나와도 치를 떨었고 할 수만 있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컴퓨터를 모조리 수장시켜버리겠다고 말하곤 했었습니다. 

 

 

컴퓨터에 대한 극한의 혐오증이 있던 저는 그 사람을 통해 눈부시게 발전한 컴퓨터 세계에 대해 처음으로 눈을 뜨게 됐습니다. 경제적 개념에 남다른 재능이 있던 저는 본능적으로 돈 냄새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정치와 함께 경제 분야 기사를 다루기로 마음먹었고 S텔레콤과 K통신사를 취재를 빌미로 드나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정보통신 관련 기사를 쓰면서 저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인간에게 시간적 한계를 극복하게 해준 문자와 함께 공간적 한계를 뛰어넘게 해준 핸드폰을 모든 사람들이 갖게 될 것이며, 따라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두 가지를 결합하면 최고의 사업이 될 것이라는 그런 깨달음 말입니다. 눈에 돈이 아른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정보통신업체들을 취재하던 중에 몇몇 벤처기업가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중에서 저의 깨달음을 이미 실현해낸 기업을 소개받게 되었습니다. 매우 실망이 컸지만 어쨌든 저는 그 장비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습니다. 그 회사의 사장을 만났고, 인맥이 풍부한 관계로 해당 벤처기업의 영업을 도와주게 됐습니다. 100억 원에 가까운 투자를 받은 그 회사는 방송3사의 메인뉴스에 나올 정도로 유망한 벤처기업으로 손꼽혔는데 막상 안에서 그 기업을 들여다보니 엉망진창도 이런 엉망진창인 기업이 없었습니다.

 

 

특히 사장이라는 작자가 개차반이었습니다. 분명 문자메시지 장비를 팔아먹을 곳이 수두룩해 보이는데 기술적 한계와 영업력 부족, 사장의 무능력 때문에 투자비를 거의 다 날리고 장비 한 대 제대로 팔지도 못한 상태였습니다. 제가 여러 군데 기업을 소개해주었는데도 전혀 추가영업을 진척시키지 못하더라고요. 직원들은 월급이 몇 달째 밀려 있었고 핵심 프로그래머와 영업사원들이 속속 이탈하는 와중에도 사장은 룸살롱이나 드나드니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러갔고 회사가 자본잠식을 넘어 언제 망할지 모르는 상태까지 추락하자 사장 놈이 저에게 영업권을 상당 부분 양도할 테니 대리점 계약을 맺자고 하더라고요. 대리점 가맹비는 그들이 월세조차 못내는 방치된 사무실의 빚을 해결해주는 조건으로 대체하자고 했는데, 영업을 해주면서 이리저리 얽혀있던 저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저는 사장의 제의에 동의했습니다. 그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회사를 하나 차리게 됐습니다. 몇 명이지만 저의 영업력을 믿고 직원으로 합류한 사람들도 있었고요.

 

 

헌데 영업을 해도 이놈의 전송장비가 수없이 오작동을 일으켜 단 한 대도 팔 수 없었습니다. 얼마 안 되지만 어머님의 쌈짓돈이었던 무려 400만원에 이르는 돈만 하릴없이 까먹게 됐습니다. 현재로 따지면 몇 천 만원에 이르는 돈이었고 당시의 저로써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습니다. 슬슬 열이 나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문자메시지 전송장비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고, 아무튼 뭔가 해결책을 찾아내지 못하면 저까지 빈털터리가 되버릴 상황에 처했습니다.

 

 

헌데 직원으로 합류한 사람 중에 S물산 출신 엔지니어가 있었습니다. 그에게 문자메시지 대량전송장비의 신뢰성에 대해 물었고, 판매가 쉽지 않을 거라는 말을 듣게 됐습니다. 그의 말에 분통이 터졌지만 이미 지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비슷한 장비를 만들 수 있느냐고 물었고, 그는 가능할 거라고 하더군요. 그것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전송장비 속에 넣은 핸드폰을 모뎀으로 바꾸면 가능할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저는 모뎀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습니다.

 

 

그럼, 모뎀은 어느 회사에서 만드는 것이냐 물었더니 대한민국 최고의 전자기업 두 군데서 만든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두 전자 기업을 만나 모뎀을 받아내면 만들 수 있느냐 물었더니, 그건 불가능하고 통신사를 통해 접근해야 할 거라고 말하더군요. 그때 그의 말을 듣지 말아야 했는데 이미 어머님 쌈짓돈도 다 말라버리고 저의 인맥을 보고 합류했던 직원들이 알아서 떠나 버렸습니다.

 

 

그때부터 어머니와 형의 압력이 가중되기 시작했습니다. 과외나 다시 하라고요. 결국 사고를 치지 않는 한 방법이 없겠더라고요. 해서 ‘루팡’이란 회사를 차려 문자메시지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동생과 친구들의 도움과 법무사의 요술까지 더해, 서류상으로만 자본금 5,000만원인 법인을 대략 400만 원 정도 들여 만들 수 있었습니다. 

 

 

물론 나중에 동생과 친구들의 도움(즉, 날릴 각오를 하고 무작정 빌린 것이지요)으로 자본금을 다 채웠지만. 어쨌든 미친 짓이었죠, 그것도 한참이나. 벤처광풍이 끝물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정말 미친짓이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DCe6rkA-n0

 

 

 

다시 일어서는 아침에(1)

 

 

 

 

햇살이다. 다시 나를 깨우는 것은 천국문을 갓 나온 한결같음이다. 긴 장마 끝에 하루쯤은 걸러도 좋을 다 쓸려나간 뒤의 첫 구호품, 멈출 수 없는 우리네 하루살이다. 神은 함께 흘러갔음으로 인간의 이름으로만 다시 서야 한다는 노아의 방주 그 다음의 축복이다.

 

 

스물여섯 언저리 그쯤에선 물을 빼지 않았다. 가슴에 담아둔 분노가 비가 되어선 다시 사일 밤낮을 퍼부으며 가로수건 담장이건 지붕 위에서 나는 범람하며 함께 울었다. 神은 그만큼 멀리 있음으로 뼈저리며 일어서는 어떤 모습에도 나는 범람했었다. 사랑했음으로 눈을 들어 하늘을 보지 않고 다시 사일 밤낮을 神의 주변에서 피기 어린 거역으로만.

 

 

등으로 코끝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 그 안에 햇살이 있다. 그래 그런 것이리라. 스물여섯 언저리엔 하늘보다 대지에 더 힘겨워 했던 것이. 다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 신보다 가까이에 있어, 문득 깨어나 보니 

 

 

한낮이다. 입천장이 달라붙고 이마와 등으로 흘러내리는 더위. 한 발쯤 물러서는 것이 바람이 될 줄이야. 그래 일어서는 거다, 이보다 더 가벼울 수 없는 무게로. 내 무력함에 그들의 하루 품에 한 걸음 물러선들 가을은 더듬거리면서도 올 것이므로. 우리가 사흘 밤낮을 마중 나가 길을 열어놓은들 젖은 땅을 건너오는 것이, 사십 중턱에서 무겁게 열리는 아침 자락, 서너 보쯤 떨어져 있는 것이 햇살 아니면 또 무엇일 수 있으랴.

 

 

 

https://www.youtube.com/watch?v=awjlrjntEGo&t=36s

 

 

과학과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이 만들어낸 총화이자 정수인, 스크린(TV, PC, 노트북, 스마트폰, 테블릿PC)을 보거나 접할 수 없을 정도로 어린 나이란 없다. 스크린 하나 없이 살아야 할 만큼 열악한 가난과 절대적 빈곤과 소외도 없다. 스크린의 누적적이고 지속적인 메시지에 길들여지지 않거나 왜곡되고 편향되지 않는 생각이나 인식도 없다. 스크린이 담지 못하는 사실이나 사건, 현상과 환상도 없다. 스크린에 올리지 못할 사소한 일상이란 없고 업데이트 돼 수정되지 않는 지식과 이상도 없다. 스크린에 영향 받지 않는 단절된 시간이나 조각나지 않는 공간이란 없다. 스크린에 의해 변형되어 왜곡되지 않는 사실이나 역사, 문화도 없다.

 

우리는 스크린을 통해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평가하며 상상하고 집착한다. 각자의 감정을 저장하고 반응을 공유하며, 개개의 경험을 링크하고 비슷한 생각을 검색하며, 편집된 주장을 전송하거나 수신 받는다. 우리는 세상이 더 과학적이 될수록 생각은 더 편협해지고 반응은 더 기계적으로 변하고 있다. 추상적 사고가 무의식적 반응과 행위에 갇혀 있는 동안 끊임없이 마음을 사로잡는 디지털 유혹만을 유령처럼 찾아다닌다. 거실과 식탁에서도, 길을 걷거나 운전하면서도, 버스와 지하철, 고속전철과 비행기 안에서도, 일을 하거나 대화하면서도, 신에게 죄를 고백하거나 사랑을 나누면서도 우리는 스크린에 앞에서 점점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류 역사의 모든 것을 담겠다는 디지털 스크린은 거대한 쌍방향의 네트워크이자 만능의 검색엔진으로 무장한 광고의 제국이다. 모든 감각과 환상, 접촉이 배제된 디지털 사정과 오르가슴의 경연장이자 소프트 파워에 대한 승자독식의 유토피아다. 스크린이 전달하는 일체의 메시지(문자, 사진, 소리, 음향, 영상)가 사실이며 실재이고 믿음이니, 이는 곧 21세기의 복음이자 전체주의의 창시자 플라톤의 환생이다. 따라서 스크린 자체가 모든 변화를 부정하면서도 끊임없이 움직이는 국가이며 사회이고 가족이며 나 자신이고 당신이다. 우리는 단지 기쁨과 슬픔, 분노와 열정, 사랑과 이별, 탄생과 죽음을 업로드 하거나 다운로드 하기만 하면 된다. 스크린 안에서의 존재란 욕망의 투영이며 상징이고, 실존이란 배설의 터치이며 감각의 클릭이다.

 

스크린에 종속된 오감은 욕구를 충족할수록 예민해지고, 신경은 정보를 전달할수록 날카로워지며, 근육과 관절은 명령을 실행할수록 경직되어간다. 예민해진 감각은 신경을 건너 띠려 하고, 날카로워진 신경은 근육과 관절에서 자유로워지려 하며, 경직된 근육과 관절은 감각과 신경을 행위의 원천에서 배제하려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수십억 년에 걸친 누적적 자연선택이 이룩한 진화의 정수인 뇌의 기능마저 저하돼 서서히 스크린에 의해 정복돼 개개인의 생각과 감정, 기억과 인격마저 디지털 정보의 누적적 결정체인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이다. 

 

 

스크린 세계의 첫 세대에서 그 다음 세대로 전해진 이기적 유전자가 스크린 안에서 일어나는 타인의 경험과 생각에 연결된 각자의 경험과 생각이 실제 환경과 혼동을 일으키면, 이는 기억의 혼돈으로 이어져 뇌의 퇴행을 초래한다. 이런 기억 작업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뇌의 가소성에 의해서 기억이 장기적 기억으로 강화될 때마다, 이렇게 강화돼 해부학적 변화에 이르게 되면 이는 곧 관련 유전자에 기록된다. 이렇게 변형된 유전자가 복사돼 후대에 전달되고 각 세대의 스크린 경험이 축적되면 인간의 뇌는 지금까지의 진화의 과정에서 벗어난 새로운 형태를 띠게 될 것이다.

 

신경회로를 형성해 다양한 사고와 개인적 경험에 의한 기억을 저장하는 유전자마저 즉각적이고 표피적인 작업 기억만 강화시키게 되면 마침내 인간은 사물과 현상을 이해하는 그 지겨운 사고의 수고에서 해방되리라. 인간 진화의 정수이며 미래의 개척자인 뇌도 신경세포인 뉴런과 시냅스 사이에서 발생하는 전기ㆍ화학적 반응의 복잡한 과정에 드는 수많은 에너지와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통합적 인지과정에서 벗어나 궁극적으로는 말초적 자극에만 반응하리라. 

 

따라서 스크린에 연결되지 않는 자, 최후의 타인으로 남아 소외되고 잊혀 저 스스로 소멸되리라. 보는 것이 곧 믿는 것이니, 스크린을 통해 맛과 냄새와 은밀한 촉감까지 전달되는 날에 인류는 디지털 세계에서 완전한 통일을 이루리라. 그 질긴 인류의 염원이 실현되는 그날을 위해 우리는 리모트컨트롤과 영상 추천 알고리즘이 만들어내는 분열되고 단절된 환상의 감옥에서 한껏 자유로우며, 정보의 바다를 마음껏 유영하고, 빛의 속도로 이어지는 디지털 네트워크의 이곳저곳에 분산된 나의 일부를 배설물처럼 남기면 된다.

 

 

타인과의 깊은 접촉은 그 자체로 범죄이니 공기처럼 자유롭고 물처럼 흘러서는 전자처럼 쾌속 질주할 일이니, 우리는 자아를 분열하고 해체하면서 전체의 조각으로써 통합된 하나의 그림으로 합쳐질 것이다. 삶의 모든 것이 메시지와 이미지의 홍수와 휩쓸려 파편화되고 종교와 정치, 사회적 가치마저 상징화되면 삶과 메시지와 이미지는 삼위일체의 성역으로 들어선다.

 

이런 신화 창조를 앞당기기 위해 우리는 언제나 온라인을 유지하고 각종 알림 기능과 노출과 관음적 본능, 폭력적 성향에 충실할 일이다. 서로 교감하는 자에겐 무한의 쾌락이 주어질 것이니, 모든 메시지와 이미지에 부착된 링크를 따라 이동하고 가상의 버튼과 아이콘을 누르고 광고를 클릭하라.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실시간으로 전해주리니, 광고의 노출과 강제에 진심으로 감사해야 할 일이다. 약간의 피로와 산만함에 따르는 에너지 손실은 최소의 생각으로 최대의 쾌락을 얻는 기회비용이니, 이는 신소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상업적 정신의 정화이자 영원불멸의 진리이다. 무료로 주어지는 것에 복종과 권력이 교차하니, 최첨단 디지털 영상과 무한대의 멀티태스킹의 영광과 영상 섭렵은 지속 가능한 유일한 영역에 들리라.

 

이제 단순하여 즐겁지 아니한 것은 생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깊은 사유와 차가운 성찰이 떠난 자리에 표피적 재미와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오락이 들어서리니, 인류의 모든 유산이 한낱 재밋거리로 전락하리라. 상식과 이성이란 먼지 가득한 박물관 창고나 공동묘지에 묻힐 것이며, 파편적 재미가 만물의 척도에 오르리니, 오직 개념 있고 쿨 한 것들만 번성하리라. 그리하여 세상 자체가 오락이 되는 날, 스크린 앞에 새로운 것도 영원한 것도 존재하지 못하리라. 오직 스크린만이 비선형적 진화의 끝에 이를 것이며, 디지털 통로와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을 천사와 악마처럼 좌우에 거느린 채, 불멸의 권좌에 오를 것이다. 그렇게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들을 지배하여 영속하리라.

 

 

생각하는 자, 지워질 것이다.

의심하는 자, 삭제될 것이다.

판단하는 자, 차단될 것이다.

분노하는 자, 퇴출될 것이다.

거부하는 자, 폐쇄될 것이다.

도전하는 자, 해체될 것이다.

투쟁하는 자, 폐기될 것이다.

 

 

비약하라, 생각의 연쇄와 사고의 비선형적 통합에서 나오는 성찰을.

벗어나라, 삶의 다양한 기억과 경험의 차이가 주는 번뇌와 소외에서.

생략하라, 이성과 경험을 통해 싹을 틔워 성찰과 창의에 의해 꽃을 피우는 과정의 수고를.

만끽하라, 우연이나 기회의 차별이 가져다 준 달콤한 결실과 비교 우위의 카타르시스를.

반복하라, 위의 4가지 정언 명령이 요구하는 것들이 나와 세상을 대체하는 그날까지.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 모두는 특이점주의자들의 예언처럼, 그 필연의 디지털 진화처럼 디지털 코도로 전환된 정신과 기억으로 영생하리라.

 

https://youtu.be/pDnGFaSuY5E

 

고 박원순 시장과 그의 전 비서를 향한 디지털 공간과 기레기들의 행태가 도를 넘었습니다. 어떤 사람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설사 잘못이 있다 해도 죽음으로 대가를 치렀다면 이것으로 끝냈으면 합니다.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모든 것들에 반대합니다. 정의당의 행태도 참담합니다. 도대체 어디까지 추악해질 것인지, 어디까지 추락해서 짐승만도 못해질 것인지, 정말, 화가 나....... 

 

 

 

 

평생의 짝을 잃은 그리움의 이름으로 쓴 시입니다. 감정이입해 써본 시인데, 이제는 제 얘기가 된 것은 아닌지...

 

그런 것 같네요, 준 것은 이미 잊어버렸고 주지 못한 것만을 기억하는 것이 어머님이지 않을까? 문득문득 터져나오는 기억에 부딪쳐 비틀거리고, 온몸을 가르는 죄책감에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 그립지 않은 날이 없네요. 

 

제가 열심히 살 수 있는 원동력은 하늘에 가서 어머님을 뵈었을 때 부끄럽지 않기 위함입니다. 힘내서 가야지요. 삶은 중단없이 진행되는 것이고, 내게 주어진 시간에 충실해야겠지요. 

 

어쩌면 죽음은 남은 자의 것인지도 모릅니다. 지금 사랑이 진행 중인 모든 이에게 신의 축복이 있기를...

 

 

 

 

https://www.youtube.com/watch?v=tZahjDNpe9w

 

 

 

 

늙은도령의 스포츠월드로써는 첫 번째 영상입니다. 아직 편집에 능숙하지 못해 혼자 떠드는 모습만 보여줄 수밖에 없네요. 적은 분들이 보시더라도 지속으로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자신이 스포라이트를 받기 위해 선수들을 죽이는 감독으로 유명한 뮤리뉴 때문에 손흥민의 공격 본능과 재능이 신계로의 도약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승점 사냥을 위한 수비축구로 일관하게 된 뮤리뉴의 토트넘, 인기구단으로의 도약도 힘들게 됐습니다. 손흥민을 풀어주던지, 뮤리뉴를 내보내던지!!! 이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UN0vsyl5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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