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를 좋아하지 않았던 분들도 혜성같이 등장한 정현의 활약상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은퇴한 이형택이 US오픈(호주오픈처럼 하드코드다)에서 16강에 오른 것이 최고의 성적이었으니, 전 세계 1위 조코비치(클레이코트의 황제 나달과 함께 페더러를 제일 많이 꺾은 선수)와 현역 세계 4위를 즈베레프를 연파하며 4강에 안착한 정현의 활약상에 (이명박이 망쳐놓은) 테니스에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었으리라 짐작해봅니다.  





윤종신의 부인인 전미라가 주니어 시절에는 세계 2위에 오를 정도의 유망주였지만, 성인 무대에서는 이렇다 할 성적을 올리지 못한 것에 비하면, 작년 11월의 넥스트 제너레이션 대회에서 우승한 여세를 몰아 2018년 첫 번째 그랜드슬램 대회(호주, 프랑스, 윔블던, US오픈 순으로 열린다)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는 정현의 상승세는 EPL을 뒤흔들고 있는 손홍민의 활약상을 뛰어넘을 태세입니다(그래서 뉴스룸에 나온 전미라의 조언은 적절할 수밖에 없다). 



정현이 역사상 최고의 선수인 페더러와 결승전에서 맞났다면 최상의 시나리오였겠지만, 제2의 전성기를 맞은 페더러와 일전을 치르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요동칩니다. 피터 샘프라스와 안드레 아가시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으며 남자테니스계를 완전히 평정(클레이코트인 프랑스오픈에서는 나달에게 발목이 잡혀 단 1회만 우승했다)한 로저 페더러는 조코비치와 나달, 머레이가 등장하기까지 무적의 선수였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밖에는 그의 전성기를 설명할 방법이 없을 정도였고, 휘귀병(이유없이 체력이 떨어지는 증상으로 고생했다)으로 고생하지 않았다면 통산 우승횟수와 통산 승률은 영원한 넘사벽의 수준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전성기 때의 페더러는 서브 앤 발리의 완성형이었고, 세컨 서브로도 에이스를 기록할 수 있었으며, 반 박자 빠른 포핸드는 최고의 여자선수 중 한 명인 슈테피 그라프의 포핸드를 연상시켰습니다. 



페더러의 유일한 약점은 한손 백핸드였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나달과 조코비치와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보강됐습니다. 경기 내내 평정심을 유지하는 집중력은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여서, 역사상 최고의 바둑선수로 평가되는 이창호의 평정심(돌부처라는 별명도 여기서 나왔다)와 비교하면 딱일 듯싶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발이 느려졌고 체력에서도 약점을 드러내는 것을 빼면 하드코트에서 페더러를 이긴다는 것은 하늘에서 별따기 같은 일입니다. 





박세리의 US오픈 우승을 연상시키는 정현의 폭발적인 상승세가, 하드코드(호주오픈 5회와 US오픈 5회, 총 10회 우승, 윔블던은 8회, 프랑스오픈은 1회 우승)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페더러를 넘어설 확률은 높지 않지만 1, 2세트를 최대한 길게 끌고갈 수 있다면 역사상 최고의 업셋도 가능합니다. 조코비치가 호주오픈 준결승에서 페더러를 꺾고 처음으로 우승했을 때도 끈질기게 물고늘어진 것이 주요했습니다. 



당시의 조코비치는 페더러의 리듬을 깨기 위해 자신의 서브게임 때 공을 코트에 튀기는 동작을 15~20회까지 반복하기도 했습니다. 신사적인 매너를 특히 중요시여기는 테니스의 특성 상 조코비치의 이런 행태는 상당한 비난에 직면했고, 그 때문에 실력에 비해 인기가 떨어지는 챔피언으로 오랜 세월을 보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페더러를 꺾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욕을 먹더라도 페더러를 뛰어넘으려면 무슨 짓이라도 해야 했을 것입니다. 





최근의 페더러는 자신의 서브게임에 전력을 다하는 방법으로 승리를 쌓고 있습니다. 매 세트마다 상대의 서브게임을 한 번만 브레이크하면 승리로 가는 길이 활짝 열리곤 했습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타이브레이크에 집중하면 되기 때문에 이런 효율적이고 노련한 게임 운영이 37세의 나이에 제2의 전성기를 열 수 있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페더러의 경기 운영은 상당히 빠르다는 특징이 하나 더 있는데 정현이 이것에 휘말려들면 승리의 확률은 더욱 줄어듭니다. 



정현이 페더러의 높은 벽을 넘으려면 자신의 서브게임은 반드시 챙겨야 하며, 무엇보다도 페더러의 첫 서브에 대한 리턴에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페더러의 서브 앤 발리에 작은 틈이라도 낼 수 있다면 코트 구석구석을 찌르는 스트로그와 패싱샷으로 역사상 최고의 업셋을 이룰 수 있습니다, 페더러의 백핸드를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것과 함께. 정현 파이팅!! 정현 그레잇!! 정현 결승 가즈아!!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윌리엄스 자매를 빼면 백인이 독점하고 있는 프로테니스에서, 그것도 4대 그랜드슬램 대회 중 하나인 호주 오픈에서 한국선수가 4강에 오른 것은 김연아의 우승에 버금가는 위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남자 프로테니스에서 동양인으로써 세계 정상에 오른 선수는 마이클 창(대만, 프랑스오픈 우승)과 리나(중국, 호주와 프랑스오픈 우승)가 유일한데ㅡ현역으로는 일본선수 니시코리 게이가 US오픈에서 준우승한 것이 최고 성적이다ㅡ정현이 준결승에 진출함으로써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사실 정현의 선전은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었습니다. 작년에 있었던 '넥스트 제너레이션'에서 미래의 남자테니스를 이끌어갈 선수들을 격파하며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이형택의 은퇴 이후 침체를 거듭하던 한국 남자테니스가 정현의 등장으로 새로운 전성기로 향해가고 있는 것이지요. 테니스의 국가대항전인 데이비스컵에서도 정현의 활약으로 아시아/오세아니아 그룹 2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정현이 준결승에서 대결할 로저 페더러(2위)는 남자테니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이자,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절대강자여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지만, 페더러에 버금가는 선수로 평가받는 조코비치와 현 세계4위 즈레베프를 격파한 상승세만 유지할 수 있다면 사상 최고의 업셋도 가능합니다. 그랜드슬램 대회에서만 19회나 우승한 페더러는 잔디와 하드코드에서는 무적의 경지에 이른 절대강자이지만 나달과 조코비치처럼 장기전에 강한 선수에게는 약점을 드러내곤 합니다. 페더러가 정현의 플레이에 대해 클레이코트(프랑스오픈)의 황제 나달과 비견되는 하드코트의 조코비치 같다고 말한 것도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따라서 정현이 페더러에게 1, 2세트를 내주더라도 랠리수를 늘리며 최대한 시간을 끌 수 있다면, 그래서 5세트까지 승부를 끌고갈 수 있다면 꿈속에서나 가능할 기적을 이룰 수도 있습니다. 조코비치와 즈레베프 전에서 보여준 서브 리턴과 코드 좌우를 파고드는 패싱샷만 터져준다면, 동시에 첫 서브 성공률을 최대화할 수 있다면 천하의 페더러를 넘어서는 사상 최고의 기적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나달(세계 1위)이 탈락했기 때문에 페더러를 넘는다면 우승까지도 가능합니다. 





정현이 금요일에 최상의 컨디션으로 경기장에 들어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이클 조던과 타이거 우즈보다 위대한 선수로 평가되는 페더러와의 경기에서 긴장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랜드슬램 대회의 준결승에서 경기를 즐기는 것이 정말로 가능하다면 그날의 정현이 그러하기를 바랍니다. 공은 둥글고 아름다운 도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야구감독보다는 철학자에 가까웠던 요기 베라의 말처럼, 경기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배구의 박정아와 축구의 손흥민을 비판하는 네티즌을 보면 분통이 터진다. 스포츠에서 승패가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승자를 축하하고 패자를 격려하는 것이 스포츠의 본질이고 정신이다. 여러 가지로 문제로 어수선한 리오에 가서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수고했다고 말하지 못할망정 성적에 따라 특정 선수를 마녀사냥하는 것을 보면 스포츠 분야에서 일베충 같은 자들로 넘처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다. 





신자유주의는 스포츠에서도 성적과 결과만 중요하게 만드는 악마 같은 통치술인데, 박정아와 손흥민을 비난하는 것을 보면 이에 지배당한 네티즌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해준다. 이들의 언어폭력과 인격살인은 일베충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패륜적인 범죄에 해당한다. 사이버 세상의 가장 큰 문제는 개별 이용자의 언어를 통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인데, 그래서 자체적인 정화작업이 매우 중요한 것인데, 이런 면에서 사이버 세상의 일탈과 폭력이 도를 넘었다.



세상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방식 중 하나가 과격하고 폭력적인 언어 사용인데, 그 불만이 집단적인 광기로 응축돼 특정인을 대상으로 언어폭력과 인격살인으로 변질되면 나치의 전쟁범죄와 똑같은 사이버 범죄가 된다. 여자배구팀의 패배는 네덜란드 선수들의 서브를 선수 전원이 제대로 리시브하지 못한 것에서 기인했는데, 공격수인 박정아에게 폭력적 언어를 퍼붓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거니와, 비판을 한다면 선수 기용을 제대로 하지 못한 감독에게 해야 할 일이었다.   



게다가 배구대표팀이 무능하고 한심한 배구협회의 행정 때문에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는 것까지 고려하면 일부 네티진의 행태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배구팀이 일본에게 승리한 것도 공격력보다는 수비력에 있었다는 것까지 더하면 네덜란드 선수들의 서브가 그만큼 좋았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우리 선수를 공격하는 것보다 네덜란드 선수들을 칭찬하는 것이 진실에도 부합하고, 그것이 스포츠 정신에 맞다고 할 수 있다. 





손흥민을 비판하는 것도 도를 넘었다. 축구라는 종목은 아무리 경기에서 우세했다 해도 골을 넣지 못하고, 단 한 번의 역습에 실점을 당하면 패배하는 스포츠다. 8강전에서 우세한 공격을 펼치고도 패한 것은 축구라는 종목이 갖는 특성 때문이며, 손흥민의 경우 결정적인 슛팅을 날리는 등 팀의 승리를 위해 전력을 다했다. EPL 개막에도 참석하지 않은 손흥민의 헌신과 눈물을 군대면제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비아냥에서는 분노를 참기 힘들었다. 군대면제는 선수 전원에 해당하는 것이지 손흥민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기에.  



아무리 결과에 만족하지 못한다 해도 이런 식의 마녀사냥은 모두에게 마이너스만 될뿐이다. 특히 언어폭력과 인격살인을 서슴지 않는 네티즌들의 영혼도 썩어버릴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사이버 세상이 갈수록 일베충 같은 자들에 의해 악마의 놀이터로 변하고 있다. 이런 식의 마녀사냥이 계속된다면 해당 네티즌들을 끝까지 추적해 그 대가를 치르게 만들어야 한다. 자신만 좋으면 상대는 어떻게 되도 상관없다는 짐승 같은 행위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초딩이라고 해도.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수영과 테니스, 골프 등과 함께 흑인의 진입장벽이 높은 종목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하나가 기계체조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미국의 흑인 기계체조 선수 시몬 바일스의 활약상은 현대올림픽이 나은 최고의 장면들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훗날 리우올림픽을 떠올리면 시몬 바일스가 첫 번째로 언급될 가능성이 거의 100%라 장담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바일스가 다관왕에 오른 것은 나치의 독일을 선전하기 위해 히틀러가 공을 들인 베를린올림픽에서 미국의 하인즈가 3관왕(최초로 100미터에서 9초대에 들어섰다)에 오른 것, 여자기계체조 역사상 최초의 무더기 만점(10점, 7회)이 나온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코마네치가 2관왕에 오른 것, 이스라엘 선수단에 대한 '검은 9월단'의 테러로 얼룩진 뮌헨올림픽에서 오른 마크 스피츠가 7관왕에 오른 것, 영원불멸할 것 같았던 스피츠의 기록을 깨뜨리며 베이징올림픽에서 마이클 펠프스가 8관왕에 오른 것 등에 비견될 수 있다.     



이번 대회에서 5관왕에 오르는 등 4번의 올림픽에서 총 28개의 메달(금메달 23개)을 수확한 마이클 펠프스와 단거리 3관왕에 오른다는 전제 하의 우샤인 볼트와 함께 시몬 바일스가 대회 MVP를 다툴 것은 확실해 보인다. 육상을 제외하면 다관왕이 나올 수 있는 종목은 리듬체조 외에는 없기 때문에, 개인종합부터 4개의 세부종목을 싹쓸이하는 리듬체조의 여신이 나오지 않는 이상 이들 3인으로 MVP 경쟁이 압축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50미터 권총에서 올림픽 3연패에 성공한 진종오가 3관왕에 올랐거나, 남자 접영 100미터에서 수영황제 펠프스를 꺾은 싱가포르의 수영선수 조셉 스쿨링이 다관왕에 올랐다면, 이들 3인과 함께 대회 MVP를 다퉜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대한민국 대표선수가 대회 MVP에 오르는 날을 기대하며, 지금까지 자신이 출전한 종목에서 최선을 다한 모든 선수들에게 경의의 박수를 보낸다. 

     



P.S. 하계올림픽과 동계올림픽을 통틀어 최고의 선수를 꼽으라면 단거리에서 장거리까지 스피드스케이팅 전종목을 석권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에릭 하이든을 들 수밖에 없다. 그의 전관왕을 육상으로 비유하자면 100미터와 200미터에서 우승한 선수가 마라톤과 경보에서도 우승하는 것과 같다. 하이든의 기록이 전무후무하다고 장담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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