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최고의 여성 프로골퍼들이 경쟁하는 LPGA는 한국 낭자들의 독무대로 변해버렸습니다. 작고한 구옥희 프로(LPGA 1승)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선수를 배출하지 못했던 한국여자골프가 박세리라는 불세출의 선수의 등장으로 변방에서 세계 여성골프의 중심으로 우뚝 솟아올랐습니다.





자하리아스, 패티 버그, 루이스 석스, 미키 라이트와 함께 역대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는 아니카 소렌스탐과 그의 라이벌이었던 캐리 웹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박세리가 없었다면, 세계 골프계를 주름잡고 있는 한국 낭자군의 출현은 최소 10여 년 뒤에나 가능했을 지도 모릅니다. 나올 선수는 나오겠지만 박세리의 공적을 무시할 수 없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당대 최고의 선수에서 역대 최고의 선수로 발돋음하고 있는 골프여제 박인비를 비롯해 최나연, 유소연, 양희영, 최은정 등을 이어 김효주, 김세영, 전인지, 장하나, 백규정 등의 LPGA 루키돌풍까지 박세리의 뒤를 잇는 한국 낭자군의 활약상은 LPGA와 KLPGA를 혼동하게 만들 지경입니다. 캐리 웹이 롤모델인 리디아 고까지 더하면 한국 여성의 우수함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이들 중에서 아시아선수 최초로 커리어그랜드슬램(최고의 영예는 한 해에 메이저대회를 4개 이상을 제패하는 것)을 달성한 박인비의 상승세는 박세리와 신지애가 이루지 못했던 역대 최고의 선수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전문가와 팬들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필자는 역대 최고의 여성골퍼로 아니카 소렌스탐을 꼽고 있습니다(패티 버그와 루이스 석스의 플레이는 본 적이 없어 평가할 수 없고, 미키 라이트는 인터넷을 통해 살펴봤습니다. 로레나 오초아는 너무 일찍 은퇴했습니다).





팻 브래들리의 전성기부터 간간이 여성골퍼의 경기를 보기 시작한 필자는 박세리 이후로는 LPGA와 KLPGA를 빼놓지 않고 보고 있습니다. 아니카 소렌스탐과 캐리 웹을 처음 봤을 때도 KLPGA였다. 대회명은 생각나지 않지만 박세리와 함께 경쟁했던 모습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소렌스탐은 박인비 만큼은 아니지만 교과서적인 스윙을 하는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조금은 가냘프던 소렌스탐은 꾸준한 웨이트트레이닝을 거쳐 단단한 체력을 갖추었고, 그에 따라 스윙도 최적화되면서 무적의 위치에 올랐습니다. 캐리 웹과 박세리라는 평생의 라이벌이 있었다는 점도 그녀를 끊임없이 자극했습니다.



지금까지 봐왔던 어떤 선수보다 완벽한 스윙을 갖고 있는 김효주가 시즌 후반부에 들어 고전하고 있는 것도 체력적 한계 때문이라면, 박인비는 그런 면에서 소렌스탐에 거의 뒤지지 않습니다(연습량이 적어서 그럴 수도 있다). 대신 ‘상금으로 직결되는’ 퍼트와 지독할 정도의 침착성이 체력적 한계를 채워주고 있습니다.





박세리는 소렌스탐에 비해 비거리와 퍼트가 조금 약했고, 신지애는 비거리와 퍼트에서 조금 약했다. 아이언 샷만 따지면 셋은 비슷하지만, 한 시즌을 풀로 가동할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에서 소렌스탐을 넘지 못했다. 이에 비해 박인비는 비거리에서 뒤지지만 숏게임과 퍼트에서는 앞선다.



특별한 부상이 없고, 지금 같은 페이스가 4~5년 정도 유지된다면 박인비는 소렌스탐의 기록 중에서 메이저대회 우승횟수는 넘을 수 있을 것 같다. 메이저대회는 2승으로 환산해주기 때문에 전체 우승횟수에서는 뒤질지라도 난공불락처럼 보였던 소렌스탐의 전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양궁을 빼면, 대한민국 역사상 한 종목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른 선수는 많지만 김연아처럼 역대 최고에 오른 선수(김연아 이전에는 카타리나 피트와 미셀 콴이 최고였다)는 없다. 박인비가 바로 턱밑에 이르렀다. 김효주가 체력적으로 한 단계 도약하거나, 장하나와 전인지의 숏게임과 퍼트가 정교해지거나, 리디아 고가 바람을 타지 않는 한 박인비의 독주를 막을 선수는 없다.



골프는 (필자가 가장 싫어하는) 자본주의의 꽃이어서 시장규모만 따지면 피겨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최고의 시나리오는 미국 선수들의 약진 속에서 박인비의 전성기가 3년 이상 이어지는 것인데, 워낙 한국 낭자군의 약진이 거세서 박인비가 역대 최고로 가기 위해서는 후배들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다. 로비가 필요할 것 같다, 조금만 봐달라고.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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