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투는 체급별 경기이지만, 로베르토 듀란과 슈가레이 레너드에 이어 파퀴아오 등이 나온 이후에는 이런 얘기가 유명무실해졌습니다. 물론 최고 중량의 헤비급은 예외입니다. 이 체급은 동양인과 백인들이 최고 자리에 오르기가 거의 불가능한 체급이며 듀란이나 파퀴아오가 도달할 수 없는 중량입니다. 한국계 복서로 제이콥스와의 방어전을 힘들게 치른 골로프킨도 헤비급으로 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권투에서 인종적 우월성 등을 얘기한다는 것은 유치하기 짝이 없는 얘기지만 최소한 헤비급에서만은 흑인들을 능가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무패로 사망한 백인 출신의 헤비급 챔피언인 록키 마르시아노도 조 루이스나 무하마드 알리(캐시어스 클레이 시절이 더욱 뛰어났다), 조지 포먼이나 마이크 타이슨 등과 같은 시대에 태어났다면 무패의 챔피언으로써 생을 마감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최근에는 무하마드 알리와 마이크 타이슨을 놓고 헤비급 최강자를 가리는 논쟁들이 심심찮게 나옵니다. 조 루이스와 무하마드 알리를 비교하던 것에서 조지 포먼과 무하마드 알리를 비교하던 것으로 넘어갔다가, 조 루이스와 조지 포먼을 밀어내고 마이크 타이슨이 들어선 것인데,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이 두 선수가 전성기 때 만났다면 무하마드 알리에게 표를 던지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모든 체급을 통틀어 최고의 복서로 추앙받던 슈가레이 로빈슨이 복싱의 모범으로 자리한 것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조지 포먼의 전성기와 마이크 타이슨의 전성기를 비교하면 저는 주저 없이 조지 포먼을 선택할 것입니다. 둘의 펀치 강도(포먼은 중량감에서, 타이슨은 스피드에서 우위를 점한다)가 엇비슷하고 가정할 때, 같은 헤비급이지만 기초적인 체격과 중량이라는 것이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상대의 펀치를 맞았을 때 그것을 극복해내는 내구성(이를 테면 맷집)에서 타이슨은 포먼의 상대가 되지 못함을 뜻합니다. 타이슨은 포먼처럼 체구가 월등하게 큰 상대에게는 곧잘 약점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물론 이런 판단에도 타이슨이 먼저 포먼에게 강타를 성공시켰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역대 모든 헤비급 선수들의 데이터를 완벽하게 소화해서, 존재하는 모든 변수들을 적용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선수별 승리확률을 계산할 수 있는 초인공지능이 나오지 않는 이상, 비교할 수 있는 객관적인 데이터를 기준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고, 그럴 경우 가볍고 작은 타이슨이 스피드만으로 포먼을 제압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허면 체중을 제외한 채 전 체급에서 최고의 복서는 누구였을까요? 무패로 은퇴한, 역사상 최고의 수비능력을 보여준 메이웨더와 가장 많은 체급을 석권한 파퀴아오의 대결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는데, 골로프킨과 제이콥스의 경기를 보고 똑같은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보았습니다. 현존하는 최고의 복서라는 골로프킨과 비교하면, 플라이급에서 라이트 미들급까지 8체급이나 석권한 파퀴아오가 한수 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는 플라이급에서 주니어 미들급까지 무려 8체급을 올렸음에도 펀치력과 맷집, 의외의 각도와 자세에서도 나오는 펀치 등은 가히 천하일절이라 하겠습니다. 최소한 패하지 않는데는 어떤 선수보다 탁월했던 메이웨더에게 패했지만, 체급에 따른 펀치력과 내구성에서 상당한 차이를 드러내는 복싱에서 8체급을 석권했다는 것은 향후로도 영원히 깨지지 않을 기록일 수 있습니다.

파퀴아오가 실신 KO패를 당한 적도 있지만 재기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그의 위대함은 가늠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파퀴아오가 그보다 한 체급 위의 챔피언이었던 마빈 헤글러나 같은 체급의 선수였던 슈가레이 레너드나 로베르트 듀란과 붙었으면 어땠을까요? 아니면 밴턴급의 전설적인 강자였던 자라테와 같은 체급으로 붙었다면 또 어땠을까요? 이런 생각들이 이어지는 중에 역사상 최고의 복싱선수에 대한 궁금중이 일었고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선수들이 떠올랐습니다. 그 중에는 우리나라 챔피언이었던 유명우와 장정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스포츠 전문채널인 ESPN도 역대 최고의 복서 50명을 선정해 발표한 적이 있는데 아래의 명단이 바로 그것입니다.

 

 

1위. 슈거레이 로빈슨 1940-65  175승(109KO)19패6무2NC    2위.  무하마드 알리  1960-81  56승(37KO)5패

3위. 헨리 암스트롱  1932-45  151승(101KO)23패9무            4위.  조 루이스  1934-51  68승(54KO)3패

5위. 윌리 펩  1940-60  230승(65KO)11패1무                      6위.  로베르토 두란  1968-01  103승(70KO)16패

7위. 베니 레오너드  1911-32  85승(69KO)5패1무                 8위.  잭 존슨  1897-1928  77승(48KO)13패14무

9위. 잭 뎀프시  1914-27  61승(50KO)6패8무                      10위. 샘 랭포드  1902-26  167승(117KO)38패37무3NC

11위. 조 간스  1891-1909  120승(85KO)8패9무                  12위. 슈거레이 레너드  1977-97  36승(25KO)3패1무

13위. 해리 그렙  1913-26  105승(48KO)8패3무                   14위. 록키 마르시아노  1947-56  49승(43KO)무패

15위. 지미 와일드  1910-23  131승(90KO)3패2무                16위. 진 터니  1915-28  61승(45KO)1패1무1NC

17위. 미키 워커  1919-35  93승(60KO)19패4무1NC             18위. 아치 무어  1935-63  183승(131KO)24패10무1NC

19위. 스텐리 케첼  1903-10  52승(49KO)4패4무                  20위. 조지 포먼  1969-97  76승(68KO)5패

21위. 토니 칸초네리    22위. 바니 로스   23위. 지미 맥라닌    24위.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   25위. 마르셀 세르당   26위. 조 프레이저    27위. 에자드 찰스   28위. 제이크 라모타   29위. 샌디 새들러   30위. 테리 맥거번   31위. 빌리 콘   32위. 호세 나폴레스   33위. 루벤 올리바레스   34위. 에밀 그리피스   35위. 마빈 헤글러   36위. 에델 조프레   37위. 토마스 헌즈   38위. 래리 홈즈   39위. 오스카 델라 호야   40위. 에반더 홀리필드   41위. 테드 루이스   42위. 알렉시스 아르게요   43위. 마르코 안토니오 바레라   44위. 퍼넬 휘태커   45위. 카를로스 몬존  46위. 로이 존스 주니어   47위. 버나드 홉킨스 48위.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   49위. 에릭 모랄레스   50위. 마이크 타이슨





저는 이 50명의 선수들 중에 5위, 13위, 17위, 25위, 31위, 34위 선수의 경기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ESPN이 선정한 순위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지만, 몇 명의 선수와 순위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맷집만 빼면 역사상 최고의 테크닉과 스피드를 가진 로이 존스 주니어, 한 체급에서만 최고의 자리를 유지했던 마빈 헤글러와 버나드 홉킨스, 무패의 챔피언인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 짐승에 가까웠던 마이크 타이슨에 대한 순위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라이트 헤비급과 헤비급 챔피언을 지낸 아치 무어를 포함시켰다면 똑같은 과정을 거친 마이클 무어러도 선정됐어야 했습니다. 자라테(홍수환을 두 번이나 KO시킨 자모라를 KO로 잡았다) 같은 멕시코 출신선수와 유제두와 박찬희, 유명우 같은 아시아 선수들이 빠진 것도 쉽게 납득할 수 없습니다. 유제두는 동양의 한계 체급이라 하는 미들급 챔피언이었기 때문에 순위에서 밀릴 수는 있어도 박찬희 같은 선수나 박찬희의 최대 적수였던 미구엘 칸토 같은 선수가 빠진 것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박찬희는 체력적인 문제가 있지만 모든 체급을 통틀어 그만큼 화려한 테크닉을 가진 선수도 드물었습니다. '복싱교수'라는 호칭을 받았던 미구엘 칸토의 스트레이트성 어퍼컷을 떠올려 보면 그가 50위 안에 들지 못한 것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펀치력을 빼면 거의 모든 면에서 완벽함을 보여준 유명우가 빠진 것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중량급 위주의 선수 선정과 순위는 지극히 미국적인 관점이어서 더욱 동의할 수 없습니다.

 

 

물론 역사상 최고의 복서를 가리는 일은 신의 영역에 이르러야만 가능할 것입니다. 이런 한계를 인정할 때, 저는 개인적으로 로베르트 듀란과 마빈 헤글러, 슈가레이 레너드, 무하마드 알리를 역사상 최고의 복싱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이름이 생각나지 않지만 무패의 페더급 챔피언이었던 중남미 선수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챔피언이었을 때 교통사고로 사망해서 그렇지 그가 방어전을 계속해서 치를 수 있었다면 분명 50위 안에 들었을 것입니다.  

 

 

현존하는 최고의 복서라는 골로프킨이 체력적 한계를 드러낸 제이콥스와의 대전을 지켜보면서 복싱팬으로 살아온 40여 년의 기억들을 떠올려보았습니다. 역사상 최고의 복서에 대한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하십니까? 당신의 마음 속에 자리해 있는 최고의 권투 영웅은 누구입니까?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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