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 운명, 그 오년 전의 약속1

 

 

  

드디어 운명을 바꿨다. 운명이 틀어놓은 물줄기를 제 자리로 돌려놨다. 누군가, 그것도 운명이라 한다면 나는 또 그 물결을 돌릴 것이다. 하나의 거짓과 하나의 비밀로 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또 죽어갔는가. 그놈의 연극을 중원이란 무대에서 내리고, 다시 돌아온 비궁(秘宮)에서.. 무천의 하늘에서.. 나 류심환(柳心煥)이 기획하고 무영이 주연한 연극(演劇)을 그놈의 무대 위에 올렸다. 운명을 내가 바꿨다.

 

 

긴 여정의 시작은 내가 한 사람을 만난 것으로 시작됐다. 나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일 수 없어, 내가 하늘 밖의 하늘, 그 후예의 자리를 버리고 무작정 비궁(秘宮)을 떠나 그를 만나 비무(比武)를 청하는 것에서 비롯됐다. 지금 내 앞에 그가 서있다. 하늘 위의 하늘, 그 천년 전설의 주인, 천상천주(天上天主) 검강천이 지금 내 앞에 서있다. 이것에서 모든 것이 시작됐다.

 

 

'무려 삼십 합이야. 그것도 그때 그때 즉흥적인 방식 같아.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있어서도 안 돼. 헌데 대체 이건..'

 

 

검강천은 지금까지의 결과를 믿을 수 없었다. 이제 약관에 이르렀을까? 상대는 어떻게든 자신의 공격을 막아냈다. 물론 그가 천상천(天上天)의 무공을 펼친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해도 지금까지 그가 펼친 무공은 모두 녹녹치 않은 것들이다. 평범한 무공도 그를 거치면 천하 일절(一絶)로 거듭나는데, 하물며 25합 이후의 초식은 지난 백년 이래 최강자인 무림 삼성(三聖)의 무공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이런 최강의 5합을 막아낼 수 있는 고수는 현 무림에선 한 손을 넘지 않을 것인데.. 상대는 약관 이전의 청년 같았고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신예였다. 게다가 무림 역사상 최고 무인의 자리에 오른 자신조차도 쉽게 이해하기 힘든 방식으로 공격을 막아냈다. 

 

 

‘이걸 믿으란 말이야?’ 

 

 

지난 삼십 합을 다시 떠올려 봐도 상대는 일정한 규칙도 없이 순간적으로 떠오른 감(感)에 의해 손을 뻗고 흔들고 펼쳐 자신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 분명했다. 더 놀라운 것은 상대의 내공 수위가 현 구대 문파의 장문과 비슷하거나 천상천 호법 수준에 조금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제 그에게 상대가 천상천을 어떻게 찾았고 천주인 자신은 또 어떻게 찾았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상대를 처음 본 순간 그저 운명의 한 축처럼 자신의 몸을 관통했던 전율 같던 느낌만 검강천(劍强天)을 사로잡았다.

 

 

'상대에겐 내가 모르는 원리가 있어. 허면.. 방법은 하나, 본 천의 무공이야. 좋아, 한천마결로 간다. 저자가 한천마결마저 같은 방식으로 막아내는지 확인해야 저자의 원리를 알 수 있어.’

 

 

마침내 그는 상대가 지난 삼십 합에서 보여준 방식의 근본 원리를 밝히기 위해 천상천 무공을 선택했다. 천상천 무공은 격이 다르다. 천년 전설의 천상천, 그 절대문파의 무공이기 때문이다. 만일 상대가 한천마결마저 앞과 같은 방식으로 막아낸다면 그것은 우연이나 임기응변이 아닌 하나의 원리를 이루고 있음이 확실해진다. 그것은 전설의 주인인 그조차도 경험치 못한 무공의 신천지다.

 

 



결국, 그는 상황에 빠져들었다. 천상천주로써 상대를 제압하고 그에게 밝혀내야 할 것들에 대한 의무보다 작금의 상황이 더 그를 매료시킨 것이다. 지금까지의 결과가 가져다 준 신선한 충격이 절대 무인으로써 더 흥미로웠고 응대방식의 간명함이 주는 의외성이 검을 든 첫 날의 초심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천상천 천주이기 전에 한 사람의 무인이었다.

 

'이런 즐거움, 정말 오랜만이야. 더는 없을 것 같던 무공의 신천지가 이런 터무니 없는 방식으로 열릴 수도 있다니..'

 

 

작금의 상황을 그로서는 믿기 힘들었지만 이런 결과가 절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것이 무공이다, 언제나 신천지의 여지가 남아 있는 것. 그에게 솔솔 재미가 붙었다.

 

 

“류심환이라 했던가? 지금부터는 다를 것이네. 이전의 것들은 잊게. 이제부터 나도 최선을 다할 테니.”

 

 

검강천이 진정한 비무의 개시 선언을 했다. 결심 했기에 그는 추호의 망설임없이 한천마결의 기수식을 취했다.

 

 

“저 또한.”

 

 

칠장 정도 떨어진 곳에서 말없이 검강천의 행동을 지켜보던 류심환도 검강천이 변한 것처럼 그도 준비에 들어갔다. 순간, 그의 눈빛이 가늠할 수 없는 깊이로 가라앉더니 투명해 오히려 푸른빛을 드러냈다. 그 역시 무엇인가 달라졌다. 그런 상대의 변화를 느끼며 검강천은 한천마결의 진기, 빙혈류를 어깨너비로 벌린 두 다리에 보냈다. 빙혈류가 두 다리의 혈맥을 따라 땅속으로 스며들어 대지의 깊은 곳에서 억겁을 흘러온 순정의 음기를 자극했다. 그 순정의 음기는 상대의 기운을 탐색하듯 빙혈류를 감싸더니, 그대로 솟구쳐 흡수됐다.

 

 

그는 두 다리의 혈맥을 타고 대지의 음기가 올라오자 빙혈류를 양 팔로 보내 대지의 음기가 그에 따라 장심에 이르게 했다. 두 절대음기가 하나가 된 그의 손바닥이 푸르게 채화됐다. 그는 선홍빛으로 물든 두 손바닥을 위아래로 마주보게 함으로써 하나의 구(球)를 감싸안은 모양을 취한 뒤 그 형태를 유지하며 가슴까지 내렸다. 빙혈류가 작동하자 천지 간에 퍼져 있는 한기가 들끓더니 그의 손바닥 안으로 모여들었다. 주위의 기온이 갑자기 내려갔고 류심환은 엄청난 한기를 느꼈다.

 

 

순간, 검강천의 양 손 안에 두 다리를 타고 올라온 대지의 순정 음기와 천지 간에 떠다니던 한기가 하나의 구(球)로 결집됐다. 거거에 한천마결의 공결(功訣)이 흐르자 그대로 결빙됐다. 한기는 그 결빙이 만들어진 순간부터 급속히 심해졌다. 게다가 결빙은 계속됐다. 두 기운이 손 안에서 계속 물방울을 만들었고 결빙됐다. 그에 따라 물방울 모양의 작은 결정체가 수없이 늘어났고 그때마다 류심환이 느끼는 한기의 강도는 더욱 세졌다.

 

 

시간이 흐르자 물방울도 동시다발적으로 늘어나더니 어는 한 순간 쩡! 하며 하나의 결정체로 합쳐졌다. 그것은 대지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얼려 가던 빙하기의 결빙과정을 두 손 안에 재현한 것 같았다. 류심환이 느끼는 한기의 강도는 결정체의 크기에 비래했고 곧이어 그가 더 이상 참기 힘든 지경에 이르자 한기는 그 하강을 멈췄다. 그와 동시에 검강천 손 안의 결정체도 확장을 멈췄다. 이 모든 진행이 반다경 만에 이뤄졌다.

 

 

‘내가 버텨낼 수 없는 한기의 한계점에 도달하자 공력을 더 높이지 않았어. 내 내부까지 들여다본다는 뜻, 역시 천상천주야. 천년의 전설에 허명은 없어. 허나, 난 류심환이야.'

 

 

그는 검강천이 초식의 격발세만으로 보여준 놀라운 무위에 감탄하면서도 결빙체가 회전을 멈춘 순간 본능적으로 그의 입술 근육 하나가 꿈틀했다. 그것은 파리가 내렸다가 가는 정도의 반응이어서 신경이 순간 반응을 한 것인지 아니면 회전을 멈춘 검강천의 배려에 그의 자존심이 꿈틀댄 것인지 분명치 않았다.

 

 

그때.. 검강천의 손 안에 떠있던 결정체가 맹렬한 속도로 돌았다. 반 자 정도의 결정체가 한 바퀴 돌 때마다 류심환은 살을 에는 듯한 한기에 저절로 몸이 굳어졌다. 그 순간에.. 번쩍!! 극음의 정수인 음강이 그 결빙체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것도 우후죽순으로 나왔다. 그런데도 결빙체는 계속해서 돌았다.

 

 

'결국 음강의 수가 한도 없겠군.'

 

 

류심환은 그런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무한공력의 소유자라도 불가능한 무위가 너무 간단히 펼쳐졌다. 그렇지만 그 간단한 동작이 만든 결과에 류심환은 살을 파고드는 한기와 하늘을 뒤덮을 듯 뻗어간 강기의 수를 헤아리기도 힘들었다.

 

 

'초식의 모든 변화를 보면 안 돼. 집중해야 해. 변화의 원리를 찾아야 해.'

 

 

한천마결의 위력을 생생히 지켜본 그에게 극도의 긴장감이 일었다. 그의 본능이 긴장을 불렀고 이를 통해 그의 집중력이 살아났다.

 

 

'내겐 천상지무 외엔 의미 없어. 이를 넘어야 천상지무와 겨룰 수 있어. 넘는다, 반드시.'

 

 

그는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는 결정체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지난 30합을 통해 그는 자신이 생각해도 막무가내 같던 해초(解招 : 초식을 파악해 막아내는 원리)의 원리를, 그 원리의 정수를 어렴풋이나마 깨달았다. 몇 천 번, 몇 만 번의 연습을 통해 그 원리를 파고들면 완성된 깨달음에 이르러 자신의 손발처럼 자유롭게 다룰 수 있을 것 같았다.

 

 

허나,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만일 검강천이 전력으로 나온다면 천상지무를 볼 수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한천마결도 그가 전력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막을 수 있었던 것, 류심환은 온몸에 퍼져있는 신경을 단 하나로 모으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아주 짧은 순간의 깨달음이었지만 자신은 그것으로부터 무엇인가 끌어내야 한다. 끌어내 무엇이든 이루어야 한다.

 

 

‘넘는다. 무조건 넘는다!!!’



야구는 기록의 경기다. 야구 만큼 다양한 기록을 중시하는 스포츠도 없다. 기록이 곧 선수와 팀의 능력을 말한다. 이렇게 기록을 중시하다 보니 야구를 떠올리면 반드시 불멸의 기록들이 따라온다. 갈수록 분업화되는 현실까지 고려하면 야구에서 기록이 갖는 의미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타자, 투수, 팀들이 한 번의 타석, 하나의 투구, 하루의 경기에 따라 기록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 야구라는 스포츠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한국의 프로야구사에서 가장 위대한 타자로 칭송받는 이승엽이 또 하나의 대기록을 작성했다. 어제까지 '배트를 거꾸로 잡아도 3할을 친다'던 양준혁과 함께 1,289타점을 달성한 단 두 명의 타자였던 이승엽이 오늘 최고의 왼손투수 김광현을 상대로 중전안타를 침으로써 1타점을 더했다. 이로써 국민타자 이승엽은 1,390타점을 달성한 유일한 선수가 됐다. 타자로서 최고의 덕목은 타점을 많이 올리는 것이라면, 이승엽은 이 방면에서도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이승엽이 양준혁보다 수백 경기를 덜 띠고도 통산타점신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홈런수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양준혁처럼 동료와 선후배들이 루상에 많이 진출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시 말해 이승엽이 세운 통산타점신기록은 협동의 산물이라는데 더욱 의미가 있다. 또한 타점이 많을수록 팀의 승리에 기여하는 비중이 높아지기 때문에 오늘의 신기록은 더욱 값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승엽은 한일통산 600호 홈런도 단 두 개를 남겨놓고 있는 상황이어서, 그의 신기록 행진은 내년에 은퇴할 때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홈런을 치고 타점을 올리는 모든 것들이 새로운 기록으로 쌓이고 축적되니 이보다 기분 좋은 일은 없으리라. 예상을 뛰어넘은 강정호의 성공으로 최고의 선수들이 메이저리그나 재팬리그로 빠져나가는 추세를 감안한다면 이승엽의 기록들은 당분간 깨지기 힘든 '넘사벽의 차원'에서 독야청청할 것으로 보인다



기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지만, 이승엽의 기록을 넘어설 수 있는 선수가 나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이치로를 연상시키는 구자옥 같은 선수가 KBO리그에서 20년 이상 활약한다면 모를까, 이승엽이 기록한 타점과 홈런기록을 뛰어넘을 선수는 좀처럼 나오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이승엽은 현역이면서도 전설이다. 훌륭한 인성까지 갖춘 이승엽이 오늘과 내일의 경기에서 한일통산 600호 홈런도 기록하기를 기대한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그녀는 감정 표현을 하지 않기로 유명했다. 평생에 한 번 우승하기도 힘들다는 4대 메이저대회를 하나하나씩 정복할 때도 그녀의 감정 표현은 밝게 웃는 것이 전부였다. 그녀는 우승하는 것보다 우승자들이 보여주는 감정 표현의 반만이라도 보여주면 그것이 이슈가 될 것이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였다. 1위로 마지막 라운드를 출발하면 역전을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그녀였으니 우승의 가능성이 매우 높았기에, 18번 홀에서 챔피언 퍼팅을 끝냈을 때의 감정 표현이 궁금했었다.   





그런 그녀가 공이 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양손을 높이 들고 하늘을 바라보며 우승의 기쁨을 표현했다. 활짝 웃은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숙이며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지난 몇 개월의 힘겨운 시간들을 떠올렸다. 그렇게 부상을 당한 자신에게 쏟아졌던 비난들과 마음고생을 훌훌 털어냈다. 여자골프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과거의 골프여제 아니카 소렌스탐이 올림픽 우승의 기쁨을 한껏 표현한 그녀를 사진으로 찍어 현재의 골프여제를 축하했다. 



강풍이 몰아치는 3라운드에서 한 타를 줄이며 우승 가능성을 높였던 그녀는, 116년만의 올림픽 챔피언에 오르기 위한 파이널 라운드의 초반부터 경쟁상대들을 압도했다. 그녀는 '침묵의 암살자'답게 전반 9개의 홀에서 현 세계 1위이자 온갖 기록들을 갈아치우고 있는 골프천재 리디아 고를, 중국의 여자골프를 한 단계 이상 끌어올린 펑 샨샨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마지막 홀에서 벙커를 오갔지만 파로 마무리짓는 특유의 위기관리능력을 보여주며 역사적인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박인비, 그녀는 이제 여자골프의 신화가 됐다. '맨발의 투혼'을 보여주며 한국여자골프를 세계 정상으로 이끌었으며, 자신의 키즈들이 세계여자골프를 주름잡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위대한 골프선수 박세리의 전설도 넘어섰다. 다른 많은 분들처럼, 박인비와 박세리가 포응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은 스포츠광인 필자에게는 행운이자 더없는 기쁨이었다. 박찬호와 박세리를 보면 IMF 외환위기를 넘겼는데, 제2의 IMF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박인비의 우승은 그야말로 '최고의 사이다'였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양희영, 전인지, 김세형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한국 여성들의 뛰어남을 입증하는 이들의 선전 때문에 푸른기와집을 임대한 노처녀의 히스테리를 대신할 수 있다면 더는 바람이 없을 것 같다. 여자피겨의 역사에 김연아가 있다면 여자골프의 역사에는 박인비가 있다. 이 이상의 글은 사족에 불과하리라.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