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감정 표현을 하지 않기로 유명했다. 평생에 한 번 우승하기도 힘들다는 4대 메이저대회를 하나하나씩 정복할 때도 그녀의 감정 표현은 밝게 웃는 것이 전부였다. 그녀는 우승하는 것보다 우승자들이 보여주는 감정 표현의 반만이라도 보여주면 그것이 이슈가 될 것이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였다. 1위로 마지막 라운드를 출발하면 역전을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그녀였으니 우승의 가능성이 매우 높았기에, 18번 홀에서 챔피언 퍼팅을 끝냈을 때의 감정 표현이 궁금했었다.   





그런 그녀가 공이 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양손을 높이 들고 하늘을 바라보며 우승의 기쁨을 표현했다. 활짝 웃은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숙이며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지난 몇 개월의 힘겨운 시간들을 떠올렸다. 그렇게 부상을 당한 자신에게 쏟아졌던 비난들과 마음고생을 훌훌 털어냈다. 여자골프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과거의 골프여제 아니카 소렌스탐이 올림픽 우승의 기쁨을 한껏 표현한 그녀를 사진으로 찍어 현재의 골프여제를 축하했다. 



강풍이 몰아치는 3라운드에서 한 타를 줄이며 우승 가능성을 높였던 그녀는, 116년만의 올림픽 챔피언에 오르기 위한 파이널 라운드의 초반부터 경쟁상대들을 압도했다. 그녀는 '침묵의 암살자'답게 전반 9개의 홀에서 현 세계 1위이자 온갖 기록들을 갈아치우고 있는 골프천재 리디아 고를, 중국의 여자골프를 한 단계 이상 끌어올린 펑 샨샨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마지막 홀에서 벙커를 오갔지만 파로 마무리짓는 특유의 위기관리능력을 보여주며 역사적인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박인비, 그녀는 이제 여자골프의 신화가 됐다. '맨발의 투혼'을 보여주며 한국여자골프를 세계 정상으로 이끌었으며, 자신의 키즈들이 세계여자골프를 주름잡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위대한 골프선수 박세리의 전설도 넘어섰다. 다른 많은 분들처럼, 박인비와 박세리가 포응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은 스포츠광인 필자에게는 행운이자 더없는 기쁨이었다. 박찬호와 박세리를 보면 IMF 외환위기를 넘겼는데, 제2의 IMF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박인비의 우승은 그야말로 '최고의 사이다'였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양희영, 전인지, 김세형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한국 여성들의 뛰어남을 입증하는 이들의 선전 때문에 푸른기와집을 임대한 노처녀의 히스테리를 대신할 수 있다면 더는 바람이 없을 것 같다. 여자피겨의 역사에 김연아가 있다면 여자골프의 역사에는 박인비가 있다. 이 이상의 글은 사족에 불과하리라.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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